[리뷰] 옥희의 영화






# 옥희의 영화 , 홍상수

 

 

 

 

찌질하다. 너무도 찌질한데, 그게 다 우리들 모습이다.
쿨하다는건 쿨한척일뿐, 세상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라 한들 찌질함을 피해갈수가 없다.
그게 곧 우리이기때문에, 찌질함이야 말로 바로 솔직한 삶의 정면성이다.















by 몰라몰라 | 2010/09/26 00:29 | 우리산책할까 | 트랙백 | 덧글(0)

[리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스포일러 있음ㅋ)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한 현대인에게 고하는 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시골 그리고 도시, 영화는 두가지 세계관을 보여준다.

외딴 시골 섬 (무도)에 평생을 고립되어 살고 있는 김복남이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서울 여자 정해원에게 끊임없는 편지와 전화를 보내면서, 묻는다. 서울은 그런거냐고. 무엇이 그런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뭍이라고는 밟아본적도 없는 김복남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꿈에 그렸던 도시. 서울. 영화에는 도시 그리고 섬 이라는 두가지 상반되는 세계가 존재한다.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질수있는 손에 물 안묻히고 살수 있을 것 같은 곳. 차가운 도시여자 정해원이 사는 서울 세계.

 여자가 공부를 배우면 딴마음을 품기 때문에 열살배기 딸에게 정상적인 초등교육 조차 배우지 못하게 하는 지독히도 관습적인 시어머니. 그리고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왔던 그 섬의 다른 할머니들이 동조하였던 또는 부추겼던 일할 수 있는 남자에 대한 절대적 권력 구조의 사회. 그 절대적 위치에서 성폭행, 성매매와 심지어 근친상간까지 당연시했던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무도의 희생자 김복남. 하루에 한번 오고가는 배를 통해서만 육지와 연결할 수 있는, 그러나 그 배마저도 남자만의 전유물이었던 감옥과도 다름없는 섬 무도는 불편할정도로 노골적이다.
 
 하지만 두가지 상반되는 세계 도시와 시골 섬을 보여주는동안,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도시와 시골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오히려 차이를 두자면, 얼마나 노골적인가, 노골적이지 않은가 이 두가지 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영화는 말한다.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기교스럽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드는 느낌은, '기교스럽지 않다'였다.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 지나치게 기교스럽지 않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차분하게 두단계에 나누어 스토리를 전개한다. 전반부와 후반부- 기교없이 드라마적으로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풀어나가는 동안 오히려 심리적 불편함을 점차적으로 고조시킨다. 다른생각에 눈돌리지 말고, 이 진실에 대하여 외면하지 말고, 눈크게 뜨고 바라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내내 숨을 조심스럽게 고르며 나는 마주해야만 했다.








"법은 환경에 따라 만들어 지는거야"

주인공 해원이 유년시절 살았던 곳으로 휴가를 떠나고자 결심했을때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일말의 향수 같은게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섬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점점 밝혀지는 극악한 사회구조에 경악한 해원은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는것이 사랑받는것이라고 착각한 무지한 어린 연희의 실상을 말하고자 했지만, 바로 복남의 시어머니에 의해 저지 당한다. 그때 시어머니는 해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법은 환경에 따라 만들어 지는 법이니 네가 감히 참견하지 말라고.

 무도는 결국 고립되고 억압된 섬의 환경과 그것을 또한 방관하고 동조하였던 주민들에 의해 무도 만의 법이 확립이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고인것인가. 모두가 미쳐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우긴다면, 정상이었던 한사람은 결국 미칠수 밖에 없다. 그 환경의 객관적 심사를 거치지 않고 주관적 판단에 의해 주관적인 법이 세워진다면 결국 그것은 그 환경으로 인해 이익을 볼 수 밖에 없던 다수의 횡포이자 기득권층의 유린이다. 결국 그 다수가 아니었던 유일한 희생양 김복남은, 이 섬의 비윤리적 사회구조에 대항을 하다못해 스스로 미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누가 김복남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의 전반부가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영화의 후반부는 오로지 복수의 칼부림을 보여준다. 극적 반전 따윈 없다. 딸 연희가 죽고, 무섭도록 평범해진 섬 생활. 감자를 캐고 새참을 즐기던 동네 노인네들의 노랫자락이 울려퍼지는 무섭도록 평범하게 돌아온 일상. 슬픔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쉴틈도 안주고 감자를 캐야만 하던 김복남. 호미를 들고 감자를 파고 호미를 땅에 후려쳐서 감자를 파고, 호미를 땅에 내리 꽂아 감자를 파고. 육체적 노동을 혹사하면서 표현하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이 솟구친다. 미칠듯이 감자를 캐던 김복남이 일어나 태양을 빤히 쳐다보다가 비틀거리며 새참을 즐기던 노인네들에게 다가가 말한다.

"태양을 한참 쨰려보았더니 태양이 말하네유"   그리고 김복남은 낫을 들었다. 


움찔움찔 놀랄정도로 잔혹하고 괴로운 장면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납득이 되는 살인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광기의 낫을 휘두르며 시체를 난도질 하는 김복남을 보고, 김복남이 미쳤기때문이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해원?

김복남이 꿈에 그리던 서울. 그리고 그 서울 여자 해원. 영화가 후반부를 달려가면서 궁금했던 점은 해원이를 살려줄까 죽일까였다. 하지만 해원은 복남의 상황을 묵인하고, 방관했다. 묵인하고 방관했다는건 그 상황을 동조한거나 다름없다. 해원이에 대한 배신감이 드러나면서부터, 복남이는 해원이가 남긴 짐가방에서 그녀의 화장품과 구두 그리고 옷가지를 꺼내입고 그녀의 희망을 뭉그러뜨린 마지막 분노의 대상 해원이를 찾아 나선다. 뭍으로.












 너무나 불친절하고 남에게 관심없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 섬의 모습과 달랐을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그저 노골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판단을 내릴것을 요구한다. 영화에서? 아니, 지금 관객 자신의 현실 세계에서.

 슬프게도, 사람은 은연중에 만들어진 잘못된 환경에서 객관적 오류가 당연시되어버렸을때, 그것을 또 오류라고 판단할 객관성을 가지지 못한것 같다.  잘못된 환경. 그리고 그 환경을 부추키는 다수의 세력이 기득권을 차지해버렸을때, 그것을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이 곧 약자이며,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기에, 눈을 감고 외면해버리고 마는 모습.

씁쓸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바로 무도구나."








by 몰라몰라 | 2010/09/20 02:19 | 우리산책할까 | 트랙백 | 덧글(0)

아이폰 슬립 사이클





아이폰 어플 중에 슬립 사이클이란 어플이 있다. 자는 동안 아이폰을 켜두면, 자는동안 나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나의 수면주기를 분석하고, 가장 깨어나기 쉬운상태가 되었을때 알람을 울려, 조금 더 개운하게 잠을 꺨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리케이션이다.
최근들어, 사용해본결과 밤에 굉장히 잠을 많이 설치고 있는것 같다. 요즘 계속되는 철야와 야근 세례에, 잠을 자지만 잠을 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던것 그탓인걸까. 어찌되었건, 최근 나의 수면주기











딥슬립 상태여야 잠을 개운하게 푹잘수있는데, 저렇게 설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서야... ㅜ ㅜ
사실, 그래프만 봐서는 얼마나 잘잔건지 안잔건지 모르겠다면,,






3월 어느날의 나의 수면그래프. ㅋㅋㅋㅋㅋㅋ

짱 잘잤다.

이런 때가 그립다. 야근도 힘든데, 잠까지 자는것조차 힘들어서야 ㅠ ㅜ


by 몰라몰라 | 2010/07/06 23:42 | 박하사탕 | 트랙백 | 덧글(0)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은 꿈꿀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을 생각 할 수 없고, 준비할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삶은
어떤 욕심도 희망도 가질 수가 없기에
밥을 굶는 것보다 헐벗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아름답지 못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아름다움의 정의는 따뜻함인데,
사람 사이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할퀴고 벗기고 찌르고 상처입히기만 하는 일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슬픈 일이다.









by 몰라몰라 | 2010/02/14 22:11 | 민트빛하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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